졸업하고 십년이 넘었다.
오랜만에 교수님과 후배들을 만나기 위해 학교에 들렀다.
교문에 들어서는 순간 예전에 내가 학교다닐 때 분위기가 아니다.
그새 학교가 어색해 진 것일까?
교수님 말씀도 예전과는 학교 분위기가 사뭇 다르단다.
우리는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는 학부인데 교수님 본인도 자기가 IT 전공 교수인지 공무원 학과 교수인지 헷갈린단다.
요즘 학생들은 1학년 1학기, 학교 분위기 어느정도 익숙해지면 1학년 2학기 때부터 남자들은 군대 문제를 결정하고 여학생이나 복학생은 공무원이나 취업 공부를 시작 한다고 한다.
누구도 전공 수업엔 관심 없다고 한다.
간혹 가산점 때문에 자격증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아니라면 이게 컴퓨터 공학과인지 알 수 없단다.
비단 우리 학교만이 아니니라.
이런 실태는 우린 뉴스에서도 많이 접하고 있다.
IMF 이후 최대 유행어는 "신용카드"와 "벤처기업"이였다.
20살 젊은 부자들이 이 때 탄생했다.
언론보도와는 달리 이미 93부터 중소기업들은 줄도산했고 대기업도 허리띠를 졸라메고 있었다.
IMF가 터지고 종금사들의 부도와 해외 자본의 대거 이탈로 나라 경제는 말 그대로 풍비박산이였다.
실업자들은 길거리 아니면 한강 다리로 향했다.
IMF 주범은 임기가 끝나 잠수 탄 상태였고 뒷 수습을 맡은 DJ는 해외 투자유치와 일자리 창출, 그리고 IMF에 빚을 갚는 일에 올인했다.
그 일환으로 벤처기업 육성이 있었다.
바이오 산업과 IT 산업이 각광받게 된 계기였다.
특히 IT 산업은 큰 투자 없이도 누구나 쉽게 창업할 수 있어서 자고 일어나면 수백개의 벤처들이 생겨났었다.
사무실에 컴퓨터 몇 개 갖다놓고 프로그래머 앉혀 놓으면 IT 벤처기업이 되는거였다.
사업계획서가 통과되면 정부에서 수억원의 투자금을 보장했다.
강남엔 20대 초반 벤처 사장들만 드나들 수 있는 술집이 생겼다는 뉴스가 나올 정도였다.
말 그대로 깜놀.
대학에서도 IT 관련 학과들이 마구 생겨났다.
웹프로그램, 웹디자인 학원도 호황을 누렸다.
'99년, 2000년엔 홈페이지 하나만 만들어도 웬만한 대기업 월급보다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
IT 버블이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학교에서 학원에서 검증되지 않은 IT 인력들이 마구 쏟아지기 시작했다.
"제로보드"라는 통합게시판이 웹디자이너들도 쉽게 다룰 수 있게 되면서 개발자 없이도 포토샵 다룰 수 있는 몇몇이 웹에이전시를 창업했다.
인력이 넘쳐나는 만큼 회사들도 넘쳐났다.
정권이 바뀌면서 벤처 기업 육성에 투자 됐던 예산은 줄어들었고 벤처 거품들도 빠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몇년 동안 엉망이 된 우리나라 IT 개발 시장은 아직도 치유되지 못하고 있다.
■ 컴퓨터 프로그래머? 웹디자이너?
"ㄱ○○○"라는 유명한 개발자 커뮤니티가 있다.
통합게시판을 배포하면서 유명한 사이트인데 많은 프로그래머들이 활동하고 있다.
그 중 눈에 띄는 몇몇 개발자들이 있다.
이 사이트에서도 특별(?) 관리되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다.
유명한(?) 그 개발자들이 배포하고 있는 것들 중 몇 개를 다운받아 내 사이트에 적용을 시도 한적이 있었다.
내 스타일에 맞게 수저하기 위해 프로그램 소스를 열었다.
기능면에서 좋은 프로그램이고 사람들 입에 많이 오르내리던 모듈이라 기대를 많이 했던 나는 다소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사이트에 그의 글들을 검색 해 몇시간동안 읽어보고 다른 프로그램들도 열어봤다.
이 사람은 학교나 학원에서 정식으로 공부한 것이 아니라 틈틈히 독학을 해서 지금의 수준이 됐고 취미로 프로그램을 하는 정도라고 했다.
취미라고 하기에 그 개발자는 "ㄱ○○○" 커뮤니티에서 영향력이 꽤 컷다.
내가 그의 소스를 열어보고 실망한 이유는 바로 그런 기본이 안되 있는 티가 너무 역력했다.
웹 프로그램을 입문하는 사람도 이 사람의 프로그램을 다운받아 분석하면서 자기 실력을 키우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고 있다.
같은 개발자 입장에서 서로의 실력을 평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한가지, 사용자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건 컴퓨터 프로그램을 글로만 배웠기 때문이다.
믿기지 않겠지만 컴퓨터 프로그램엔 휴머니즘이 있어야 한다.
개발자의 감성이 느껴질 수 있어야 좋은 프로그램이다.
정부는 IT 개발자 경력 인증제라는 것을 시행하고 있지만 미흡한 것이 너무 많다.
관련 자격증으로 대표되는 "정보처리"는 전공자가 아니여도 누구나 쉽게 취득 할 수 있어 이미 자격증으로써의 기능을 상실한지 오래다.
보다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이 구축 되지 않거나 기능을 인증 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장치가 탄탄하게 정비 되지 않는다면 이런 검증되지 않은, 즉 실력이 부실한 개발자들이 우리 IT 개발 시장의 주류로 작용되면서 많은 부작용이 나타날 것이다.
■ 해 보면서 출퇴근 하는 것이 소원?
복학을 하고 열심히(?) 공부하다보니 졸업 시즌이 됐다.
동문체육대회 뒷풀이에서 선배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었다.
자기들은 해보면서 출근하는 것이 소원이란다.
이게 무슨 말일까?
나도 졸업작품을 하거나 경시대회 출품작이나 프로젝트를 할 때는 밤낮 없이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던 적이 있지만 회사에서 왜 해 뜨기도 전에 출근을 해야 하는지 이해는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 말은 현실이였다.
보통 6시까지 출근하면 10시쯤 퇴근 한단다. 운이 좋으면...
10년 전인 그 때도 1주일에 4일 정도는 회사에서 먹고자고 3일 정도는 옷을 갈아 입으러 집에 잠시 들릴 수 있다고 한다.
3년 전 우린 다음 대통령은 누가 될 것인가에 관심이 쏠려 있을 때 코스콤 사태로 많은 비정규직 IT 노동자들은 길거리에서 부당해고에 대한 집회를 하고 있었다.
몸을 쇠기둥에 묶어 두기도 하고 경찰의 강제 연행에 맞서 싸우다 다치기도 했다.
이들은 모두 비정규직이였고 어느날 갑자기 실업자가 됐다.
일단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하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IT 인력 파견 업체로 입사한다.
자신이 취업한 회사 현관은 면접 볼 때 한번 들어가보고 내내 다른 회사 전산실로 파견나가 있어야 한다.
일본으로도 수출(?)이 되기도 한다.
일본은 사무용 프로그램으로 자국에서 개발한 코볼이란 언어를 사용했는데 일본 학생들은 더 이상 코볼을 배우지도 않고 하려고 들지도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값싼 우리나라 IT 인력을 파견하는 업체들이 많다.
소모품이다.
IT 노동자들의 연봉은 논하기도 어렵다.
잘리지 않고, 혹은 회사가 없어지지 않고 꾸준히 다닐 수만 있는 것만도 다행이다.
IT 개발자들의 일할 수 있는 환경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아예 해외로 눈을 돌리는 우수 인재들은 더 늘어나게 될 것이다.
그럼 우리나라엔 누가 남게 될까?
■ 웹프로그래머는 만능?
해외로 이민을 간 어느 개발자의 블로그를 본적이 있다.
처음 그가 적응하지 못한 것은 야근이였다고 한다.
보통 퇴근 시간이 오후 5시인데 1분이라도 회사에 남아 있다면 상사가 달려와서 빨리 퇴근하라며 제촉한단다.
왜?
처음 그가 외국 회사에 취업이 됐을 때 사무실에 LAN선이 벽과 바닦에 그대로 노출 되어 있는 것을 보고 퇴근 후에 남아서 LAN선을 모두 천정으로 올리고 각 컴퓨터와 가까운 곳의 LAN 컨넥터에 연결해 케이블을 완벽히 깔끔하게 정리 했다고 한다.
다음날 직원들이 출근 해 그의 업적(?)을 보고 모두가 깜짝 놀랐다는 것이다.
프로그래머가 LAN을 설치 할 수 있었다는 것에 놀랬고 상사는 그가 퇴근 후 업무로 과로라도 한다면 회사의 피해가 크다며 다시는 퇴근 시간 이후엔 사무실에 남아 있지 말 것을 당부 했다고 한다.
외국의 그 회사에서는 프로그래머는 프로그램만 만들면 됐고 디자이너는 디자인만 하면 됐고 기획자는 기획을 하고 서버 관리자는 서버 관리만을 담당한다.
우리와는 많이 다르다.
프로그래머가 컴퓨터 조립부터 사무실 LAN 설치, 서버 셋팅까지 다 한다.
어쩌면 한 분야에서 깊이 있는 내공을 쌓을 수 없는 이유가 이런 업무 환경 때문일지 모른다.
도무지 내 분야에 매진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당연히 능률도 떨어지고 실력도 향상되지 못해 항상 제자리다.
프로그래머는 만능이 아니다.
■ 학생들도 배울려면 돈 내라.
어도비(adobe)의 포토샵이 어떻게 세계적은 이미지 편집 툴로 자리 잡을 수 있었을까?
어도비는 자국의 학생들에겐 학생버전을 따로 만들어 매우 헐값에 보급하거나 교육용으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하면 무료로 학교에 지원해줬다.
학생들은 별 무리 없이 어도비 프로그램으로 공부를 하게 되고 취업을 해서도 손에 익은 어도비를 선호하게 된다.
업무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회사 입장에서도 직원들이 편히 사용 할 수 있는 어도비 제품을 구입하는게 도움이 된다.
12년 쯤 전에 내가 학원에서 강사로 있을 때 원장님이 이 지역 학원 연합회 부회장을 지내고 있었다.
학원장들과 회의 끝에 국산 웹페이지 편집 툴을 대량 구입해서 학생들에게 수업하기로 했다.
대량 구입을 하게 되면 아무래도 할인이 될까 해서 경쟁관계에 있는 학원들이 뜻을 모았고 우리 원장님이 대표로 서울 본사를 방문했다.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할인 된 가격에 S/W를 보급 해 줄 수 있냐고 하니 아무리 학원이고 대량 구매를 한다 해도 단 돈 10원도 깎아 줄 수 없다는 대답만 듣고 내려왔다.
당시 MS는 유독 우리나라에서 점유율이 낮은 워드프로세서 시장을 잠식하기 위해 MS워드를 1카피에 1만원에 판매하던 때였다.
하는 수 없이 MS워드의 HTML 편집 기능을 이용하여 테그 수업을 두 달 정도 한 다음에 과목을 폐지 했다.
대학에 다닐 때 우리 학교는 국립이라 돈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교수님은 우리에게 비주얼베이직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 자비로 1개의 원본과 10개의 카피본을 구입하셨다.
11개로 40명이 수업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단속이 심해 불법 프로그램도 사용 할 수 없었다. 물론 해서도 안되지만.
IT 개발 인력을 양성한다던 정부에서는 한 개에 수백만원하는 S/W 구입 비용은 단 한푼도 지원해 주지 않았다.
비주얼베이직과 델파이, 파워빌더는 정말 재미있었고 앞으로 만들고 싶었던 프로그램들이 너무 많았다.
그런데 내가 지금 웹프로그램을 하는 이유는 무료 FTP와 30달러 정도하는 에디터만 있으면 프로그래밍 할 수 있는 기본 환경이 갖춰지기 때문이다.
비싼 비용 때문에 학교에서도 불법 프로그램을 써야 하거나 아예 공부를 할 수 없게 된다.
개인적으로 가정에서 불법 프로그램으로 공부하기도 하지만 그건 독학이다.
독학엔 언제나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우리나라에서만 특히 비싼 S/W가격, 대책이 마련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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