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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익숙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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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주 어렸을 때, 그보다 좀더 컷을 때도, 어쩌면 내가 세상에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지 않아도 되던 때까지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그런 두려움이 있다.
그래서 종교를 갖거나 애써 외면하려 여러가지 궁리를 한다.

삶과 죽음은 하나라는 말을 들었을 때 전혀 어색하거나 낯설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을 다시 상기시켜 준 것 같았다.

혼자 살아 온지 벌써 15년이 됐다.
15년 전에는 어땠을까.
그 때도 혼자였다.
그래도 한동안은 버틸 수 있었는데 점점 기운이 빠진다.
벽에 박힌 못이 빠지지 않았다면 난 지금 이런 아픔 없이 편히 잠들어 있을것이다.
한 번은 어려웠고 두 번은 그보다 덜 어려웠다.
세번째는 아직 모르겠다.

TV에서 오락채널에 맞춰 놓고 잠이 든다.
사람들이 떠들고 웃는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든다.
그리고 방송이 끝나며 나오는 노랫소리에 잠이 깬다.
가을이다.
슬픈 노래가 나온다.
가슴에 송곳이 박히는 것같은 외로움이 밀려온다.
그래로 영원히 잠들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죽는다는 건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죽을거라고 말하고 다니는 사람은 그리 쉽게 죽지 않는다.
그것은 죽기 싫으니 살려달라는 애원의 다른 표현이다.
그러나 그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다만 서로 익숙해 질 뿐이다.
그러면서 "죽음"과 "삶"의 경계가 모호해 지고 두려움이 점점 사라지게 된다.
용기가 생기는 것이 아니다.
항상 머리속에 담아 두고 있는 것이 현실과 상상의 벽이 사라지며 그냥 익숙해 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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