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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원 때문에 박사과정 포기한 선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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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늦은 나이에 대학원을 결심하면서 가장 고민했던 부분이 교수 접대였다. 언론에서 이미 많이 다뤄졌지만 전 국민에게 공론화된 적이 없기 때문에 대학 분위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수업보다도 교수를 어떻게 모셔야하는지가 늘 고민이였다. 우리 과를 선택한 이유는 20년 전 학부를 지냈고 잘 알고 지내던 교수님들이 아직도 계시기 때문이다. 뉴스에서 보는 것처럼 학생을 함부로 다룬다거나 술 값 심부름, 대리운전을 시키는 것 같은 막장 교수님은 안 계시기 때문이였다.


그러던 중에 선배를 만나 식사를 하게됐다. 나는 이제 졸업 논문만 남아있는 상태에서 지도교수의 갈굼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마음에 준비를 하고 또 선배에게 조언을 듣고자했다. 사실 나의 지도교수님은 석사 학위 논문에 대해서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 편이다. 또 학생 뿐만 누구에게도 갑질을 한다거나 부당한 대우를 하는 분이 아니다. 내가 걱정하는 교수는 심사 위원을 맡게된 다른 교수의 갑질이였다.


선배는 나에게 해주는 이야기를 다 듣고나서 나는 대학원에 대한 회의감을 갖게했다. 선배는 백만원 때문에 박사과정을 포기했다고 했다. 국립대학원이였기 때문에 등록금 백만원 부족해서 박사과정을 포기해야 했을까?


석사 과정을 하면서 지도교수와 전혀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오히려 자상한 인품에 수업도 충실해서 존경심을 갖고 학업에 임했다고 한다. 4학기가 되고 학생들은 논문을 써야했다. 초안을 작성해서 지도교수에게 보여주니 이런저런 지적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 지적은 당연하고 선배도 각오한 일이기에 또 밤을 새워가며 논문을 보충하고 다시 검토를 받았다. 그 때 지도교수의 제안을 받았다고 한다. 논문을 하나 쓰려면 몇 달을 고생해야하고 교수도 연구가 밀려 바쁘니 백만원 정도를 주면 교수가 직접 논문을 작성해 주겠다는 제안이였다고 한다. 선배는 평소 존경하던 교수의 입에서 나온 말을 믿기 어려워 대답을 망설이다 돌아왔다고 한다. 학생들이 인원을 나눠 4명이 그 교수의 지도를 받고 있었는데 모두 같은 제안을 받았다고 한다.


선배 성격상 그런 부당한 제안을 당연히 거절했고 논문 심사가 끝나는 날까지 교수에게 불려가 연구실에서 밤을 새기 일수였다고 한다. 내용에 큰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문장에 조사 하나, 단어 하나 트집을 잡아 사람을 괴롭히는 것이다. 고속도로를 한 시간을 달려야하는 거리에 학교가 떨어져 있었는데 논문 작성 기간에는 남편이 혼자 육아와 살림을 도맡아 해야했다. 박사학위까지 해서 교수를 하려고 했던 선배는 박사과정을 포기하고 지금은 간간히 대학에 강의를 다니고 있다.


그런 일들을 직접 겪고보니 우리나라 대학은 등록금도 문제지만 이런 학습/연구 체계에도 문제가 많아 보인다. 대학에서 교수라는 위치는 불가침 영역으로 자리 잡았지만 비싼 등록금을 내는 학생 입장에서는 교수 평가 제도를 적극 개선해야하지 않나 싶다. 몇몇 학교에서 외래강사 위주로 교수평가를 하고는 있지만 그건 외래강사를 압박하는 용도로 악용된지 오래다. 교수가 젊은 시절 박사과정을 하면서 배우고 연구했던 지식을 은퇴할 때까지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교수가 태반일 것이다. 즉, 대학원생 쯤 되면 학습/연구 수준이 교수를 띄어 넘는 경우가 많다. IT 전문 이공계는 특히 그렇다. 교수가 대학원생의 실적과 연구 성과를 가로채는 이유도 아마 그런 것일 것이다.


선배의 이야기를 듣고나니 만감이 교차한다. 돈이 많아서 교수들 자주 불러서 한우도 대접하고 고급 양주도 선물했다면 학교 생활이 조금 편했을까? 대학원을 진학하기로 결심하고 주변에 선배들의 이야기를 많이 참고했는데 어느 학교든 다들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나는 말로만 듣던 그 일을 겪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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