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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을 진학할 때 가장 고민하는 건 교수 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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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중반 늦은 나이에 학위를 취득하고 또 몇 년 뒤에 마흔이 되어서야 대학원 진학을 결심하게 됐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살면서 나는 컴퓨터 프로그래밍 아니면 다른 걸 할 줄 아는 게 없다. 전공도 모두 IT 관련이여서 학점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학점만으로 대학원 전형을 한다면 크게 어렵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가장 고민한 건 교수와의 관계였다. 20여년 전 우리학교가 전문대이던 때에 나는 그 학교를 다녔고 지금은 4년재가 돼 대학원까지 개설 되었다. 국립이라 교수님도 여전히 같은 과에 재직중이다. 처음부터 사립대학원은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우리학교가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진학하고 싶은 과는 우리과가 아니였다.


내가 우리과를 선택하게 된 이유는 하나다. 교수와의 관계에 큰 공을 들이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였다. 적어도 20여년을 알고 지낸사이고 당시에 우리는 어렸고 교수들은 젊었었다. 서툰 사람들끼리 의기투합하면서 열심히 학교 생활을 했던 기억이 좋게 남아 있다. 그래서 적어도 우리과에서는 뉴스에서 보던 대학원 교수의 갑질, 갈굼은 안 당하겠구나 생각했다.


실제로 내 생각은 거의 맞았다. 20년 전 나의 지도교수님이였던 분을 나는 또 나의 대학원 지도교수님으로 선택했다. 어릴 때(?)부터 나와 성격이 잘 맞았고 성향이 비슷했다. 남들이 어떻게 하던 원칙주의자였고 학생들이 진심으로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 하나였다. 내가 교수님과 연구실을 함께 사용할 때 커피잔을 씻거나 책상을 정리하는 것조차 나에게 시키지 않고 본인이 직접하셨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내가 수업이나 상담을 받기 위해 연구실을 찾으면 커피와 과일부터 내오신다.


한번은 학교 이름으로 통장에 10만원이 입금 된 걸 알았다. 무슨 돈인지 학과에 물어보니 조교도 잘 모른다. 행정착오가 있었나 학교 행정실을 찾아가려던 차에 지도교수님이 대학원생 연구실정에 나를 넣으셔서 그 돈이 통장에 입금된 것이다. 지금도 지도교수님은 학교에서 학생에게 지원하는 혜택을 찾아주기 위해 서류를 작성하고 여기저기 전화를 돌린다. 내가 미안할 정도로 나를 챙겨주신다.


우리과 교수님 중에 딱히 마음이 악하다거나 사람 괴롭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다만 성격이 모두 제각각이라 경우에 따라서는 피곤함을 느낄 때가 있기는 하다. 석사 3학기째에 나는 마지막까지 피하고 싶었던 교수님의 수업을 결국 수강하게 됐다. 졸업할 때까지 그분 수업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나이가 가장 많은 교수님이다. 우리과가 처음 생기고 5년째에 내가 입학했기 때문에 교수님 대부분 나이가 30대였는데 그분은 40대였다. 지금은 은퇴를 앞두고 있다. 졸업후에도 그 교수님의 지도를 받았던 다른 친구들은 꾸준히 연락을 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그 교수님에 대한 소문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교수님이 졸업한 학생들과 왜 그렇게 유대관계를 유지하고 있는지.


1년 동안 무탈하게 학교를 다니다 결국 그 교수님 수업을 듣게 되면서 나의 학교 생활에 문제가 생겼다. 교수님을 찾아오면서 어떻게 매번 빈손으로 오냐는 말을 한 학기에 세 번을 들었다. 직접 자기에게 선물을 달라고는 못하고 우리 지도교수님을 빙자해서 돌려말하지만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충분히 알고 있다. 우리 지도교수님은 학생이 커피 하나 사들고 오는 것도 마다하는 분이시라는 거 내가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논문이 끝나고 난 뒤에 제대로 된 보답을 생각하고 있었다.


한때는 존경하던 스승이였는데 나이 들어서 학생에게 먼저 그런 얘기를 했다는 것에 나는 많이 당황했다. 8명의 교수 중에 나는 4명의 교수에게 수업을 들었고 논문심사가 끝나면 교수와 제사 사시에 아무런 이해관계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선물을 준비하려고 했다. 그런 나의 진심을 짓밟았다. 개강을 하고 다시 복도에서 그 교수님을 마주칠 때마다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마음이 복잡해졌다.


뉴스를 보면 사실 이런 건 문제도 아니다. 대학원이면 학부생과는 다르고 우리나라 특유의 교수 문화가 있으니 관례상 접대도 하고 선물도 했다면 이런 고민을 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적어도 우리과 교수님들은 최근 미디어에 등장하는 여타 교수들처럼 속물은 아닐거라고 믿었던 마음에 상처를 조금 받았다.


사제지간에 작은 선물은 정이고 예의일 수 있다. 하지만 같은 과에 박사과정에 있는 다른 대학원생은(사업으로 돈이 좀 있지만) 이미 교수들에게 수백만원의 접대비를 썼다는 얘기를 들었던 터라 상당한 부담으로 다가온다. 전국 대학에 우리 지도교수님같은 분만 있다면 우리나라 대학은 세계 인류 대학으로 진입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학과의 물을 흐리고 잘 못 된 접대 문화에 길들여진 한 두명의 교수는 분명 문제가 있다. 다른 대학도 마찬가지리라. 모든 교수가 속물이 아니라 한 두 명 때문에 학교 전체가 좋지 않은 평을 받게 되는 것이다.


곧 설이 다가오는데 한우라도 보내야하는지 계산기를 두들겨 봐야겠다. 나는 좀더 깊은 학문을 원해서 대학원을 진학하게 되었는데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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