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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전 한문은 읽을 수 있는데 백년 전 한글은 읽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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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이 쯤 되면 사실 과거사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이제 막 사십대에 들어선 과거 "낀세대"로 불렸던 우리다. 이전 포스팅에 말했 듯이 우리는 국정교과서 세대다. 유신과 새마을 운동을 긍정적인 부분만 부각 시킨 왜곡 된 역사를 배웠다. 그리고 이공계열로 들어서면서 역사는 우리 관심에서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이공계가 아니여도 국가에서 획일적으로 작성한 역사 내용 그대로 암기하는데 그쳤다.

 

내가 학창 시절을 보냈던 고장은 농업과 공업이 공존하는 농공산업단지가 자리한 곳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인근 공장으로 취업을 나는 게 수순이였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우리 동기들 부터 대학 진학율이 급격히 증가했다. 당황한 교장이 노골적으로 대학 진학을 방해하기도 했다. 실업고에서는 대학 진학율이 아니라 취업율이 더 중요한 학교 성과다. 그럼에도 동기들 중에는 대학을 나온 학생들이 많은 편이다.(우리 학교 졸업생 중에서)

 

대학을 진학했던 친구들은 다른 학문과 세상을 경험 할 기회가 많았다. 고등학교 까지는 교육을 쇄뇌 당하듯이 받아야했다. 그렇게 배운 지식이 당연히 옳고 세상의 전부라 여긴 채 사회로 뛰어들 게 된다. 이르면 19살 때 처음 사회에 발을 딛고 20년이 넘는 지금까지 가족과 먹고 사는 문제가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살아왔다. 고등학교까지만 졸업한 친구들은 국정 교과서 이후 제대로 된 역사 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대학을 진학했던 친구들과 시사를 논할 때 자주 마찰이 생기곤 한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에 대해서 모르고 있다. 인터넷이 보편화 된 지금, 손가락 터치 몇 번에 방대한 자료들이 넘쳐나지만 그건 우리 또래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문화다. 지식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는 초등, 중등 시절에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우리는 그럴 기회가 없었고 어린 나이에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던 친구들은 진실을 배울 기회 조차 없던 것이다. 이건 사실 생활 환경과 교육 여건에 따라 다른 것이기 때문에 모든 40대 중년은 그렇다고 일반화 하기는 어렵다. 단지 내 주변의 경우 답답할 정도로 역사에 무관심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우리 민족에게 있어 가장 위대한 유산이 무엇이냐 묻는 다면 당연히 "한글"이 빠질 수 없다. 일제가 우리의 주권을 침탈한 후 현대에까지 우리의 "한글"은 여전히 난도질 당하고 있다. 일제는 민족말살정책 일환으로 "우리말"과 "한글"을 없애기 위해 갖은 악행을 저질렀지만 우리 조상들은 끝까지 우리말과 글을 지켜냈다. 문제는 그 후다.

 

<미륵사지 석탑 봉안 기록>

선화공주 일화로 잘 알고 있는 백제 무왕 시절 건립 되었다는 미륵사 석탑에서 발견 된 기록물이다. 금속판에 정밀하게 음각 된 문자들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미륵사는 638년에 건립 되었다고 하니 약 1,400년 전에 만들어 진 기록물이라 볼 수 있다.

 

역사학자들은 1,400년 전에 쓰여진 한문을 읽고 해석하는데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한문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1,400년 전 문자를 읽어내는데 어려움이 없다. 1,400년 전의 한문과 지금의 한문은 같은 문자를 쓰기 때문이다.

 

만약 한문이 시대에 따라서 당대의 사람들이 자기 편한대로 수정하고 개정해서 사용했다면 어땠을까?

 

지구상에는 사라진 고대문자가 많다. 고대 이집트 문자나 히브리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현재 없지만 그 기록물은 아직도 어렵지 않게 발견되고 있다. 문자가 사라졌다기 보다 그 문명이 사라진 것이다. 그래서 역사학자들은 고대의 문명을 먼저 이해하고 그 시대에 사용했던 문자들을 해석하고 있다. 만약 한자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복잡한 한자의 획을 줄이고 모양을 달리해서 자기들 표기하는 데 편하도록 고쳐 사용했다면 어땠을까? 아마 고대 한자를 해석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고 과거의 정확한 역사를 알지 못했을 것이다. 현재와 과거가 동떨어진 전혀 다른 민족의 역사가 됐을지도 모른다. 일본의 민족말살정책은 우리의 문명을 말살 시키려던 의도였던 것이다. 문명이 사라지면 다 사라진다.

 

 

 

독립신문 일부

독립신문의 일부다. 19세기 말에 쓰여진 독립신문은 이제 갓 100년을 넘었다. 이때의 신문은 한글로 쓰여지고 있었다. 이제 막 100년을 넘긴 이 한글을 우리가 책을 읽듯이 쉽게 읽어 내려 갈 수 있을까? 한글은 표음문자이니 어느정도 비슷하게 발음을 내다보면 뜻을 유추하기는 쉽다. 그것이 한글의 우수성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신문의 짧은 광고글에서 우리가 이해 할 수 없는 단어들이 꽤 여러 개 등장한다. 현대에 와서 쓰이지 않는 단어들도 있다.

 

국정교과서 세대인 우리는 한글을 비하하는 역사를 배웠다. 최근 상주의 훈민정음 해례본이 논란이 되고 있지만 세종대왕은 전국에 훈민정음 해례본을 배포해 모든 국민이 글을 배울 수 있게 했고 실제로 한글은 백성들 사이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었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내용은 틀렸을 수 있다. 일부 양반 세도가들은 모든 백성이 글(문자)을 사용 한다면 특정 세력들만 누려왔던 문자 권력이 약해 질 수 있었기 때문에 훈민정음을 반대했을 수 있었다.

 

<19세기 "이응태 묘"에서 나온 아내의 편지>

500년 전 이응태의 묘에서 발견 된 아내의 편지 내용이다. 이것 말고도 한글로 작성 된 편지나 문학서는 자주 발견되었다. 우리가 배운 것처럼 조선시대에 한글을 배척하고 천민이나 쓰는 글로 여겼다면 500년 전에 남편의 묘에 아내가 한글로 편지를 써서 함께 묻을 수 있었을까? 천민이나 쓰는 천한 글로 여겼다면 남편의 묘에 한글 편지를 함께 묻었다는 건 매우 불경스러운 일이였을 것이다.

 

여러 사료들을 보고 판단해 보면 양반들 사이에서 공식적으로 문자를 사용 할 때는 한문을 썼을지 모르지만 백성들 사이에서는 훈민정음이 흔하게 사용하던 국문이였을 것이라 충분히 유추하고도 남는다.

 

아직도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 때 창호문에 비친 달 그림자 모양을 본따서 만들었다는 말도 안 되는 폄하 내용이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일제시대는 끝났지만 한글의 수난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똑같은 한글인데 우리는 왜 100년 전 글을 읽는데 이리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일까? 광복 후 지금까지 한글을 수차례 개정되었다. 받침이 달라지고 표기가 달라지고 발음이 달라졌다. 본래 훈민정음에서 4개의 발음(ㅿ,ㆁ,ㆆ,ㆍ)을 빼면서 발음은 쉬워졌지만 한글로 표현 할 수 있는 발음의 범위는 그만큼 좁아졌다. 그렇게 지금까지 몇 번의 한글 개정을 거치면서 100년 전과 현재의 한글은 많은 변화가 있었다.

 

100년 후의 우리 후손들은 현재의 한글을 읽을 수 있을까?

한글 개정은 지금도 계속 되고 있다. 외래어가 난립하면서 표기법이 수시로 바뀌고 한글 규칙은 그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어린 학생들의 한글 파괴가 언제나 문제가 되지만 사실 한글 파괴는 일제시대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국립국어원과 여러 언어 학자들에 의해 자행되고 있었다.

 

 

 

내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웠던 부분은 발음을 편하게 하기 위해 과거의 발음 기호 4개를 뺐는데 한글보다 더 어려운 발음 체계를 갖고 있는 미국식 영어 발음을 위해 혀 밑을 잘라내는 수술까지 하는 몇몇 학부모들의 행태다. 미국식의 복잡한 발음은 사교육까지 받아가면서 힘들게 배우려 들면서 한글은 발음과 표기가 어렵다며 빼버리고 바꿔 버린다. 그러면서 언어의 역사성, 사회성이라며 말도 안 되는 핑계를 같다 붙인다. 개인적인 견해이지만 사라진 한글 발음도 복원해 다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간단한 표기와 발음을 고집하다간 후세에는 한글이 일본어처럼 단순한 언어가 되지 않을까 우려 스럽다.

 

요즘 방송하고 있는 개그 콘서트의 "리얼사운드"를 갈무리 한 그림이다. 실제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의성어, 의태어가 제대로 표기 되어 있는지 유머로 풀어내고 있는 내용이다. 웃고 넘어가면 그만이지만 여기서 우리가 한가지 짚고 넘어갔으면 한다.

 

한글은 표음문자로 세계 어떤 언어보다도 의성어, 의태어가 발달한 언어다. 우리 민족의 풍부한 표현력을 글로 표현하기에 한글은 부족함이 없었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 가장 흔하게 예를 드는 게 색의 표현이다. "누렇다", "누르스름하다", "파랗다", "파릇하다" 등등 하나의 색감을 두고도 수십 개가 넘는 서로 다른 미묘한 차이까지 표현 할 수 있는 단어가 존재한다. 수 많은 형용사, 의성어, 의태어 등이 있지만 우리는 획일화 된 단어 몇 개로 의사표현하는데 익숙해졌다. 영어는 대화 할 때 사용하는 언어보다 표정, 몸짓, 손짓, 음의 높낮이 등의 "body language"가 차지하는 부분이 크다. 그래서 전화 통화로 대화 할 때 영어는 의사 전달이 매우 어렵다. 반면 우리말은 다양한 표현이 가능하기 때문에 얼굴을 대면하지 않고도 자기 감정이나 의사를 비교적 정확하게 전달 할 수 있다. 점차 사라지는 우리말이 많아지면서 의사 표현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기는 하다.

 

우리가 우리말과 글을 함부로 다루고 있는 건 아닌가 고민해야 될 시점이 아닐가 싶다. 어린 학생들도 그렇지만 어른들도 "욕"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 사람들이 심성이 나빠서가 아니라 그만큼 표현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미묘한 감정까지 글과 언어로 표현 할 수 있는데 우리말을 잘 모르기 때문에 그 표현이 "욕"으로 대체 되는 것이다. 나 역시 그런 경험을 할 때 답답함을 느끼고 있다. 수십년 IT 전공 서적이 아니면 인터넷으로 글을 읽는 게 대부분이니 표현력이 현저히 줄었다. 우리의 무관심 속에서 우리말과 한글은 계속 퇴화하고 있는 게 아닌가 안타깝다.

 

 

 

앞으로 우리는 한글 "개정"이 아니라 "복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100년 후의 후손들이 200년 전의 한글도 문제 없이 읽고 이해 할 수 있도록 한글은 "복원"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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