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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찔했던 치악산 등반, 많은 것들을 떠올리고 반성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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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곳이 강원도다보니 산은 지척에 널려있다. 500m 고지의 야산은 자주 다녀 봤지만 1000m가 넘는 산은 등반 해 본지가 몇 년 됐다. 예전에 자주 다녔던 치악산을 올라 보자며 결심한지도 몇 년은 지났다. 차일 피일 미루다 보니 결국엔 못 오르겠다 싶어 이번에 갑자기 일정을 잡았다. 산악회 보다는 혼자 주로 산을 다닌다. 의무감으로 산을 오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친한 친구나 지인들 중엔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혼자 다니게 됐다. 이번에 새로 시작하는 일이 잘 될 수 있도록 기원하는 마음도 있고 나를 극복 할 수 있는 계기를 주고 싶었다. 하지만 준비 없이 오르게 된 치악산 등산에서 나는 큰 위기를 맞게 됐다.

사다리병창(벼랑을 뜻하는 강원도 사투리)은 나에게 의미 있는 장소다. 10여년 전 이곳을 내려 올 때였다. 터벅터벅 내려오는데 백발의 노인 한 분이 말을 걸어온다. 산행을 하다보면 낯선 사람들과도 쉽게 인사하고 대화를 나누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노인이 나의 사주를 물어온다. 그리고 손가락을 이용해 뭔가를 계산하다 조상님을 잘 모시라는 상투적인 말씀을 하신다. 잠시 후에 다시 나를 보더니 "돌아서 가는 길도 길이다" 이런 말씀을 남기시곤 당신은 잠시 쉬어 가겠다며 나와 헤어졌다. 그 때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날 밤 잠을 자기 위해 누웠는데 갑자기 낮에 그 노인의 말이 떠오르면서 한 없이 눈물이 흘렸다. 내가 정말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을 때였다. 그 분의 말씀이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갑자기 계획한 산행에 나는 큰 위기를 겪었다. 치악산은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물 한 병으로 쉽게 오르 내리던 곳이였다. 자주 갈 때는 한 달에 한 번씩 오르기도 했다. 위험하긴 했지만 청바지와 운동화 차림으로도 뒷산처럼 오르기도 했다. 정상에서 잠시 쉬었다 와도 세시간 반이면 여유롭게 내려 올 수 있었다.

 

나는 아직도 20대 청춘이였던 그 때를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내 몸은 불혹이 됐다는 걸 망각했다. 오전에 업무를 마치고 정오쯤 치악산 주차장에 도착했다. 짐을 꾸리고 산행을 시작했다. 세렴폭포까지는 산책하는 기분으로 오를 수 있는 길이다. 그곳에서 나는 등선길을 택했다. 등선길로 올라 계곡 길을 따라 내려오는 게 항상 같은 코스였다.

 

준비 없이 오른 산행 탓이였을까? 사다리 병창을 지나면서 나는 체력이 소진 됐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이미 절반 이상을 올랐기 때문에 포기 할 수도 없었다. 그 때부터는 오기였다.

이제 300m만 오르면 되니 나는 이 사진을 찍으면서 이 곳이 마지막 휴식처가 될 줄 알았다. 그러나 계단이 꺽어지는 부분에서 나는 매번 쉬어야 했다. 체력은 이미 바닥났고 배는 고파 왔다. 준비해온 물과 음료수는 이미 동이 났다. 계단을 두 칸씩 오르고 한 번 숨고르기를 계속 했다. 내 뒤에는 더 이상 사람이 없다. 도움을 줄 사람이 없었다.

 

 

난간을 잡아 당기며 한 계단씩 오르며 겨우 정상에 도착했다. 시간을 보니 네시 반이다. 이미 하산 했어야 할 시간에 정상에 도착한 것이다. 해가 일찍 지는 겨울에도 이렇게 오래 걸린적이 없었다.

 

 

 

나는 하루 대부분을 책상 앞에서 컴퓨터와 씨름한다. 그리고 1년 대부분을 그렇게 보낸다. 배가 나오고 중년의 아저씨가 다 됐다. 마음은 청춘인데 몸은 오래 전에 내 마음과 다른 길을 가고 있었다. 가끔씩 오르는 야산말고 1,000m 이상 높은 산을 올라야겠다 결심한 계기는 이렇게 아저씨로 늙어가는 나를 방치 할 수 없었고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나를 시험하는 계기를 만들고 싶었다.

 

힘이 들었지만 내가 정상을 오르지 못할 것이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한 발짝씩 오르면 언젠가 결국에 정상에 도착하게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40Kg의 등산 가방을 메고 설악산을 종주하던 그 때의 체력은 아니지만 나를 믿고 있었다. 문제는 하산이였다. 보통은 한 시간 남짓이면 세렴폭포까지 내려 올 수 있었다. 하지만 내 체력은 20대 청춘이 아니고 평소 운동을 꾸준히 하던 건강한 몸도 아니였다.

 

잠깐의 휴식을 마치고 바로 하산을 시작했다. 몸은 이미 지쳐 있는데 허기가 밀려온다. 다리는 후들거리고 무릎은 나의 통제를 벗어났다. 이정표를 보면 나는 1/5도 내려오지 못했다. 해는 저물어 간다. 이러다간 산속에서 밤을 맞을 거 같았다. 이렇게 늦을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겉옷도 준비하지 못했다. 무릎 통증으로 나는 한 번에 10m를 내려 오는 것도 힘들었다. 그리고 허기가 나를 더 힘들 게 했다. 어쩔 수 없이 계곡의 물을 담아 입안을 행궜다. 나중에 그 물로 배를 채우게 됐다. 산 중턱을 내려 왔을 때 해는 이미 넘어가 어둑해졌다. 그 때부터는 조바심이 생겼다. 차라리 굴러서 다치면 119라도 부를까하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 응급구조 번호가 있는 기둥의 숫자를 외우고 있었다.

 

다행인 건 예전부터 자주 다니던 길이라 해가 졌지만 길을 잃지는 않았다. 이정표가 아니여도 앞으로 얼마가 남았는지 알고 있었다. 세렴폭포까지 1Km를 남겨 두고는 밤길을 내려 갈 각오를 했다. 무릎의 통증은 이제 정신력이 아니면 버틸 수 없었다. 전화기의 배터리를 확인하니 절반이 남았다. 조명으로 사용 할 수 있으니 아껴 쓰기로 하고 나는 계곡을 건너는 철다리 위에 누웠다. 차라리 충분히 휴식하고 마지막 힘을 내 보기로 한 것이다. 그래봐야 5분 쉬는 게 전부였다. 해가지니 조바심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10m를 걷고 쉬고 하기를 반복한 끝에 겨우 세렴폭포까지 도착 할 수 있었다. 어두운 산속에서 혼자 눈 앞의 바윗길을 보며 "여기선 나 아니면 대신 걸어 줄 사람이 없다. 나를 응원해 주는 사람도 없다." 그런 생각으로 한 걸음을 떼었다. 그게 사실은 지금 나에게 주어진 현실이기도 하다.

 

정말 힘든 산행이였다. 무릎 통증보다 허기가 더 참기 힘들었다. 옛날엔 잘 챙기던 오이와 초코바도 안 먹고 그냥 갖고 내려오는 경우가 많아서 이번엔 준비 안 했던 게 너무 후회 됐다. 이렇게 오래 산속에 겯혀있게 될 줄은 몰랐다. 뜻하지 않은 야간 산행을 하고 마지막 대피소의 자판기에서 음료수 하나를 뽑았다. 한 모금 마시고 나니 웃음이 났다. 방금 전까지는 캄캄한 산속에서 사투를 벌였던 내가 여유롭게 의자에 앉아 음료수를 마시고 있었다.

 

그렇게 앉아 쉬고 있는데 어둠속에서 누군가 또 걸어오고 있다. 아저씨 한 명이 더 있었던 것이다. 그 산속엔 나 혼자 있었던 게 아니였다. 나보다 연배가 많아 보이던 그 분은 아직 체력이 남아 있어 보였다. 오후 늦게 산행에 나섰다가 늦어진 것이라 했다.

 

그날 밤 나는 무릎 통증이 심해 결국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음 날엔 걷기도 힘들었다. 이틀이 지나고 나서야 이제 정상으로 돌아왔다. 최근 몇 년 동안 살아오면서 그렇게 힘든 경험은 처음인 듯 하다. 통증 때문에 10m를 걷기도 힘들어 산속에서 혼자 사투를 벌였던 생각을 하면 평소 내가 너무 방심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치악산? 옛날엔 내가 뒷산처럼 오르던 산인데." 사람들에게 나는 자주 이렇게 말하곤 했다. 옛날 일이였다. 옛날에 한창 인기 있던 지나간 스타에게 TV에 나와서 추억팔이 하지 말라는 사람들 얘기처럼 나는 옛날 잘 나가던 시절에 시간이 멈춰 있었던 것이다.

 

올 가을에 다시 치악산을 오르기로 했다. 그 때를 위해 지금부터 체력 관리를 해야 한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도 목표를 이루기 위해 평소에 꾸준해야 한다. 어느 순간 잘 해서 되는 일이 아니고 평소 성실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 이번 산행은 내 생에 최고로 힘들었지만 나에게 가장 많은 깨달음을 얻게 된 산행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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