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5.18을 모르던 내 친구. 며칠째 가슴이 먹먹하다.

728x90
반응형

25년 지기 친구가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 한 후 서로 떨어져 지내며 자주 만날 수 없었는데 최근에 한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자주 만나 그동안 못한 이야기를 나누며 우정을 쌓고 있다. 80년대 후반, 아직 초등학생 티를 벗지 못한 상태에서 처음 마나 어느 덧 불혹이 됐다.

 

친구는 결혼을 일찍했다. 큰 애가 벌써 중학생이고 곧 고등학생이 된다. 바쁘게 살아온 친구다. 19살 졸업도 하기 전에 실습을 나가고 또 그 회사에서 취직해 지금까지도 게으름 피운적 없이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가는 친구다. 20년을 넘게 하루 12시간 힘든 노동을 하면서 집도 장만하고 가족들 잘 보살피고 있다. 누구보다 성실히 살아가고 있다.

 

요즘들어 나는 그 친구와 자주 만나 술잔을 기울이는 일이 잦다. 못 보고 산지가 오래 됐으니 만나면 할 얘기도 많아진다. 보통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지만 남자들 다 그렇듯이 정치, 사회문제가 주제가 되면 우리는 의견이 많이 갈린다.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 끝나고 검찰에서 여러 비리 혐의로 조사하느라 나라가 온통 시끌 했는데 이명박 때는 조용하게 잘 넘어간 걸 보니 이명박이 정치를 잘하긴 잘 한 거 같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들었을 때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구나 처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너무 다른 세상에 살고 있었다.

 

며칠 전이였다. 우리는 또 퇴근하고 만나 가벼운 술잔을 주고 받았다. 서로 정치성향이 다르다는 걸 확인 했기 때문에 실수하지 않으려고 조심했는데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지 취기에 또 최근 일어나고 있는 사회 문제들을 안주 삼게 됐다. 친구가 다니는 회사에 나이가 한참 어린 직원이 5.18에 대해 물어보더란다. 그래서 나 살아 있을 때 일어난 사건 아니면 모른다고 대답 했단다. 5.18은 우리 살아 있을 때 있었던 사건이라 말해 줬다.

 

5.18이라고 들어본 거는 같은데 6, 70년대에 있었던 사건이 아니냐고 한다. 민주화 운동이 아닌 대학생 데모 사건이 아니냐고 한다. 여기서 내가 화를 참지 못했다. 5.18을 모른다는 건 부끄러워할만한 일이다,라고 말을 해버렸다. 여기에 친구도 발끈하게 됐다. 5.18이 어떤 사건이며 언제 왜 일어났는지 전혀 모르고 있는 내 앞에 앉아 있는 친구가 답답하고 안타까웠다.

 

흥분을 가라 앉히고 다시 천천히 대화를 이어갔다. 하루에 1분만 인터넷 검색을 해도 그런 건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관심을 갖으면 된다, 나는 또 훈계하 듯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결국 우린 서로 불쾌한 기분으로 술자리를 파하고 말았다.

 

어떻게 5.18을 모를수가 있지? 나는 집에 와서도 쉽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다음 날 아침부터 지금까지 나는 그 친구의 입장이 되어 보려고 애쓰고 있다. 학창 시절을 같은 환경에서 살아 왔으니 그 때까지의 삶은 어느정도 공감이 된다.

 

우리는 실업계 학교였다. 지금은 마에스터고로 바뀌었지만 우리는 중학생이 되면서 공돌이가(우린 그저 주어진 환경에 살아가고 있을 뿐이지만 사람들은 이런 말로 우리를 비하했다) 되기 위한 훈련을 받는다. 교과서도 그렇게 편성 돼 있다. 중학생이 되면 한 울타리에 있는 실업고등학교에 가기 위해 공부하고 고등학생이 되면 인근 공단에 취직하기 위해 공부한다. 중학교 -> 고등학교 -> 공단, 이렇게 살아지도록 우리는 어린시절 부터 교육 받고 또 그게 당연한 삶이라고 믿고 살았다. 우리 고장에서는 그게 정규 코스다.

 

나는 정규 코스를 거부하고 대학에 진학하게 됐다. 다른 대부분의 친구들은 그 정규 코스대로 살고 있다. 80년대 후반, 중학교에 다닐 때 역사 교육은 딱 1년 정도를 배운다. 그 후로는 역사를 접할 기회가 따로 없다. 내 친구도 이해가 되는 것이 25년 전에 잠깐 배운 역사를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기는 힘들다. 그래도 살면서 우리가 매년 겪고 있는 5.18에 대해서 모를 수 있을까? 보통은 조금만 관심을 갖으면 인터넷 검색을 해 볼 수 있지만 사실 관심이 없으면 죽을 때까지 모를 수도 있는 것이다.

 

아침 6시에 일어나 출근하면 밤 9시는 되야 일이 끝난다. 12시간을 넘도록 기계 소음으로 귀마개를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환경에서 20년을 살아 온 친구다. 다른 친구들도 대부분 그런 인생을 살고 있다. 어떻게 보면 당장에 먹고 사는 일이 아니면 다른 일에 관심을 갖는 것도 사치 일 수 있다. 가끔 보는 TV 뉴스와 회사에서 직원들과 잠깐씩 나누는 대화가 유일한 세상과의 소통이다.

 

나는 5.18에 대해서 언제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을까? 적어도 학창 시절은 아니다. 그 때는 역사보다는 자격증이 우선이였다. 서른 중반을 넘겨서지 않나 싶다. 사회가 점점 상식이 비상식에 눌려 힘을 잃어 갈 때부터 나는 우리나라의 처해 있는 현실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평소에도 역사책은 따로 준비해서 읽곤 했지만 심도있게 하나하나 공부했던 건 최근이다.

 

역사 교육은 아이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수능에 포함이 되고 안 되고가 문제가 아니다. 어른들부터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하고 역사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상에서 쉽게 역사를 다뤄야 한다. 이제는 그런 고민을 해야 한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