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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국수라 떠오르는 요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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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라면을 처음 먹어본건 초등학교 4학년이 됐을 때였던거같다.
당시 안성탕면이 50원했던거 같다.
나는 사실 그 전까지는 라면이란게 세상에 있는지도 몰랐다.
내가 유년기를 보냈던 고장은 양평 산골이였고 초등학교를 다녔던 곳은 강원도 횡성 산골이였다.
어른이 되서 안 사실이지만 세상에 통행금지라는 제도가 내가 학교 다니던 시절에도 있었다고 하는데 워낙 세상과 단절된 곳이여서 그런것이 있었는지 조차 모르고 살았다.

어느날 어머니께서는 라면을 한솥 끓이셨다.
난 그것이 처음에 새로운 국수라 생각했었다.
먹어보는데 국수 치고는 굉장히 싱겁다.
차라리 된장 풀고 감자 썰어 넣은 국수가 더 맛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러고도 몇 번을 더 국수 넣은 라면을 먹었다.

6학년이 될 무렵 신라면이 나왔고 가격이 100원이나 했다.
면사무소(면서기)에서 일하시는 아버지를 둔 내 친구가 신라면을 들고 학교 운동장에서 아이들을 모아놓고 자랑하듯 스프 인심을 쓴다.
그 때 난 또 다시 라면은 반드시 끓여 먹는게 아니란 걸 알았다.
내가 고등학생이 되어 용돈이란게 처음 생겼을 때 맨처음 사먹었던게 작은 컵라면이였다.
동네 구멍가게에서 몇년은 됨직한 컵라면을 사서 숨어서 몰래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 때가 90년대 초반이니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참 늦은 경험(?)이다.
가난하게 살아보니 있는 사람들에 비해 모든 면에서 늦어지게 된다.
그렇게 가난은 되물림 되는거 같다.
사는 집 자식이 말 한 마디로 얻을 수 있는 것도 없는 집 자식은 엄청난 시간과 노력과 땀을 들여야 얻어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내가 라면이란 걸 처음 먹어보고 나서 20여년이 지난 지금 라면값이 100원 올랐다고 세상이 시끄럽다.
이제는 그렇게 말한다.
그 깟 100원...
그러나 2008년인 지금도 내가 처음 라면을 접했던 1980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에겐 결코 그 깟 100원이 아니다.
없는 사람들의 대체식량이던 라면이 이젠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없는 고급 음식이 되어가고 있다.
20년동안 라면값은 9배 이상이 올랐지만 국민 GNP는 9배를 오르지 못했다.
월급인상 또한 라면값만도 못하다.
이런걸 격세지감이라고 할까.

옛날 보릿고개 시절 쌀이 없어 끓여먹던 풀뿌리죽이나 수제비, 비지 등이 지금은 사람들 특별식으로 각광받는 것처럼 먼 시간이 흐른 후에 라면이 특별식으로 대접 받는 날이 올까?




정치적인 얘기지만 지금 우리나라의 라면값 인상은 전쟁직후 미국의 조삼모사에 놀아난 결과다.
그 때 우리는 먹을게 없어 미국의 구호품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미국은 고맙게도 아무런 조건 없이 우리에게 커피와 밀가루를 무상 제공했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미국이 나눠주는 밀가루에 의존하기 시작했고 오래전부터 밀농사를 짓던 농부들은 차츰 밀농사를 포기하고 지금은 전국에 손 꼽힐정도다.
당시 공짜로 나눠주는 커피 맛에 길들여지고 지금은 한 잔에 3천원이 넘는 커피를 사마셔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미국의 곡물가격 인상에 우리는 선택의 여지 없이 비싼 밀을 수입해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밀 값이 비싼데 사람들은 왜 밀 농사를 짓지 않고 돈도 안되는 쌀농사에만 매달리고 있는걸까.
그건 과거 밀농사를 짓던 분들이 지금은 모두 없어지고 밀 농법에 대한 지식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쌀 농사만 짓도록 되어 있는 절대농지법에 예외를 둬서 밀, 보리같은 곡물 농사는 가능하도록 바꿀  필요가 있다.



우리는 "세계화"를 무슨 구원의 주문인냥 떠들고 다녔지만 이 건 세계화 되어가는 지구의 단편적인 모습이다.
FTA가 진행 될 수록 힘없는 국가는 점점 국제 물가에 놀아나게 된다.
경제 약소국들이 국제유가 1달러 상승해도 국가 경제가 휘청하는 걸 보면 앞으로 국제 곡물가격, 국제 체소 가격, 국제 원자제 가격... 이런 말이 뉴스에 나올 때마다 늘 조마조마 하며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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