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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코딩 교육은 값싼 노동력 배출일까 사교육 확장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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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등학교 2학년, 그러니까 90년대 초반이다. 나는 실업고 기계과 용접을 전공하고 있었다. 그리고 컴퓨터 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80년대 중반, 나는 횡성 두메산골 작은 학교를 다니면서 선생님이 갖어다 놓은 8Bit 컴퓨터의 매력에 빠진 뒤로 지금까지 프로그래밍을 하고 있다. 내가 컴퓨터 학원을 다니게 된 이유는 독특한 계기가 있다. 아무튼 나는 내가 좋아하는 걸 배웠다.

 

Basic은 내가 초등학생인 당시 독학으로 공부했던 것이다. 그런데 고3이 되면서 전자계산기라는 과목이 신설 됐다. 90년대의 IT 열풍은 지금 못지 않았다. 전국의 대학에도 전산 관련 학과가 우후죽순처럼 신설됐다. 그런데 우리 학교에는 전자계산기라는 과목을 가르쳐 줄 교사가 없었다. 기계과에서 배우는 원동기나 설계같은 전문 분야를 가르칠 교사가 없어 대기업을 다니고 있던 사람이 교사로 초빙되어 우리 학교에 왔을 정도로 교사 인력이 부족했다. 전산 과목이 신설 됐을 때는 인근 학교에서 농업을 가르치던 교사가 배정 됐다.

 

학기가 시작되자 전산과목 선생님이 나를 부른다. 자기가 이번에 전산을 가르치게 됐는데 컴퓨터까지 구입해서 방학내내 책을 봤는데 도무지 모르겠단다. 그때부터 전산 수업을 하기 전에 선생님은 나에게 선행학습을 받았다. 진도만큼 내가 먼저 선생님을 가르쳐 주면 선생님은 그 내용으로 다음날 수업을 했다. 가끔 수업중에 막히는 부분은 나에게 와서 물어보곤 했다. 반 아이들은 어리둥절 했다.

 

어떤 사람에게는 코딩이 별거냐 할 수 있다. 컴퓨터 앞에서 키보드나 두들기면 된다고 생각 할 수 있다. 요즘은 컴퓨터로 글을 쓰는 소설가도 많은데 그 사람들도 키보드나 두들기고 있으면 소설이 술술 써지는 걸까?

 

왼쪽에 "Hello world"라는 문장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는 이 문장을 처음 접하게 된게 20년도 더 된 거 같다. 나름 역사가 있는 문장이다. 프로그래머가 되겠다고 언어를 하나 정해서 입문을 하게 되면 사람들은 제일먼저 출력문을 배운다. 꼭 그렇지 않더라도 입문에 들어서기 전에 제일 먼저 실행해 보는 것이 출력문이다. 과연 내가 계산한 것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우리 눈으로 확인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계산 결과를 출력한다. 그런데 보통은 계산 보다는 출력을 먼저 배운다. 그때 입문서에는 print("hello world")라는 짧은 명령 줄 하나를 예로 들어준다. 지금 중견(?) 개발자들은 주로 30대 후반이나 40대가 많을텐데 "Hello world"라는 문장은 그들에게 "초심"을 의미한다. 내가 처음 프로그래밍을 시작 할 때 모니터에 출력 된 이 단어를 보면서 아, 내가 뭔가를 할 수 있겠구나 자신감을 얻고 설레던 초심이 이 글자 속에 있다. 그렇게 시작한 사람들은 밤을 새고 코피를 쏟고 개발자가 되기 위해 청춘과 열정을 쏟아붇는다. 개발자들은 순간 자기 결과물에 만족하는 경우는 있어도 이쯤하면 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리 공부해서 끝이 없는 게 개발자의 길이다.

 

우리나라는 개발자가 턱없이 부족한 상태다. 90년대 우후죽순처럼 생겼던 IT 관련 학과도 통폐합 되거나 규모가 축소됐다. 또 개발자 근무 환경이 열악하다보니 학생들도 굳이 힘든 프로그래머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정부에서는 부족한 개발자를 해외 인력으로 충당한다는 소문이 돌더니 코딩 조기 교육이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우리가 개발자를 프로그래머라고 했을 때 코딩하는 사람은 코더라고 할 수 있다. 개발에는 펄블리셔라 불리는 분류도 있다. 아직 개발자는 뭐 하는 사람이라고 규정되어 진 건 아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개발자를 코딩하는 사람으로 알고 있다. 자동차를 생산 할 때 자동차를 설계하는 사람과 부품을 조립하는 사람 모두 자동차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내가 학생들에게 하는 말이지만 개발자는 프로젝트를 설계하거나 디자인을 하거나 코딩을 하고 퍼블리싱을 하는 사람 모두를 말한다.

 

그러면 정부는 왜 개발자를 양성한다고 하지 않고 코딩 조기교육을 콕 찝어서 말했을까. 추측이지만 정책을 담당하는 사람중에 IT 전문가가 없었을 거라고 본다. 만약 전문가가 나서서 의도적으로 코딩 조기교육을 기획한 것이라면 이건 정말 무서운 일이다.

 

 

 

코딩하는 사람은 아마도 자동차 생산 현장에서 조립을 담당하는 노동자에 비유 할 수 있을 것이다. 코딩 조기교육은 이런 현장 노동자를 양산하겠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S/W 개발 시장은 건설업계만큼이나 하청이 만연해 있다. 오히려 그것보다 더 혼탁하다.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에서 S/W를 직접 개발하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대기업이 S/W를 발주하면 그 프로젝트는 보통 3~5단계의 하청을 거친다. 기업이 프로그래머를 채용하지 않고 이렇게 하청으로 S/W를 생산하는데 요즘은 하청을 주려해도 개발자 구하기가 힘들어 개발 단가가 올라가는 추세다. 만약 2000년대 초반처럼 개발자가 넘쳐난다면 헐값에 부릴 수 있는 노동자가 지금은 너무 귀한 몸이 된 것이다. 만약 코딩 조기 교육이 이런 현장 노동자를 배출하려는 목적이라면 우리나라 S/W 산업은 다시 90년대로 퇴행 할 수 밖에 없다.

 

친구가 직접 격은 사례가 있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면서 창업했던 회사에서 함께 교육용 CD타이틀을 제작하던 친구다. 이 친구는 나중에 서울로 취직을 해서 디렉터 코딩을 하고 있었다. 교육사업도 하고 있는 대기업에서 발주한 교육용 CD타이틀인데 디자이너와 코딩을 하는 이 친구 둘이 제작하고 있었다. 음성 녹음은 아르바이트를 썼다고 한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는 400만원짜리였다. 대기업에서 발주하고 전혀 관련 없던 출판사에서 이 사업을 입찰받아 두 번의 하청을 거치니 2억짜리가 400만원이 된 것이다. 만약 내 친구와 같은 값싼 노동력이 없었더라면 이런 하청은 불가능하게 된다. 그래서 요즘 하청 마진으로 먹고사는 기업들이 곤경에 처한 것이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 이미 겪었던 것처럼 모든 학교에 코딩 교육을 제대로 해 줄 수 있는 교사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사람들을 보조교사로 채용한다면 임용고시에 붙고도 발령을 못받는 예비 교사들의 반말이 있을테고 또 그렇게 임시로 채용되는 교사들은 비정규직일 뿐이다. 제대로 교육이 될 수 없다. 만약 코딩 교육이 필수 과목으로 분류 된다면 학부모들은 사교육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발빠른 학원가에서는 코딩 조기교육에 대비하라며 영업 활동을 하고 있다. 초등 교과서에 한문 병행 표기와 마찬가지로 이것역시 사교육을 부추기는 결과만 초래 할 수 있다.

 

 

 

페이스북을 만든 주커버그는 초등학생 때 이미 아버지의 치과에서 사용 할 수 있는 환자 관리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럼 우리나라는 초등학교부터 코딩을 가르치면 주커버그 같은 인재가 더 많이 배출 될 수 있을 거 아니냐 할 수 있지만 그건 큰 오산이다. 주커버그는 미국 사람이고 미국에 살고 있으면서 미국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한국 사람이고 한국에 살고 있다. 한국과 미국은 많이 다르다. 어쩌면 주커버그도 "Hello world"를 처음로 출력하고 설렜을지 모른다. 우리가 학교에 입학해서 처음 "I am a boy"를 배우고 "가나다라"를 배우면서 설렜던 사람 몇이나 될까? 만약 코딩을 학교에서 일률적으로 교육한다면 자기 학습이 아니라 다른 과목들과 똑같이 시험을 치루기 위해 공부하는 여러 과목 중에 하나가 될 수 밖에 없다. 대학이 수능 변별력이 약해지자 논술을 도입했고 발빠르게 논술 학원이 생겨나는 게 우리나라 교육이다.

 

좋은 개발자를 양성하고 국가의 미래 원동력으로 키우고 싶다면 학교에서 주입식 교육을 할 게 아니고 환경을 바꿔야 한다. 입시 교육에 치여서 아이들은 자기 특기가 뭔지, 적성이 뭔지 제대로 알아 갈 수 있는 기회가 없다. 원래는 프로그래밍에 재능이 있던 사람이 지금 은행에서 도장 찍고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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