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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4년 IT를 전공하고 취업을 위해 다시 IT 학원에 등록한 후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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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실업 고등학교를 나왔다. 책으로 하는 공부 보다는 손으로 뭔가를 만들고 몸으로 체험하는 걸 좋아했던 나에게 딱 맞는 진로였다고 생각했다. 물론 중학생 때 공부를 썩 잘 한 것도 아니였다. 실업계 고교가 사회적으로 그렇게 편견에 둘러 쌓여진 곳인지 그 때는 알 수 없었다.

 

이공계 고등학교를 가면 자기 전공을 정할 수 있다. 공업 학교의 경우 입학 단계에서 부터 전공 학과를 선택 할 수 있지만 실업계고의 경우 2학년이 되면서 전공을 선택하기도 한다. 쉽게 말해서 공부 못하는 아이들이 취업을 위해 기술을 배우는 곳이 실업계고였다. 물론 당사자인 우리들의 생각은 그렇지 않았지만 사회적인 시선과 제도는 그랬다. 그래서 우리 의사와 상관 없이 우린 노동자가 되기 위한 훈련을 받았다.

 

그때가 90년대 초반이였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졸업하면서 대학을 진학하는 것보다 취업(실습) 나가는 것을 더 장려했다. 학교에서 노골적으로 대학 진학을 방해하기도 했다. 실업고등학교에서는 취업률이 곧 실적인 것이다. 그래서 졸업 할 때가 되면 누구나 자격증 하나 이상은 취득해 있고 자기 특기가 한 두가지는 있다. 기술이 없어도 취업에는 큰 문제가 없다. 어차피 학교 성적은 생산 현장에서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런 환경에 적응 할 수 없어 나는 1년 재수 후에 대학을 들어갔다. 전문대였다. 어릴 때부터 컴퓨터를 좋아했던 나는 재수하면서 정보처리 자격증을 취득하고 특별전형으로 우리과에 들어왔다. 전산과에서는 주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배운다. 취업을 위해서는 사무자동학과가 더 유리했지만 나는 취업보다는 어릴 때부터 유일하게 흥미를 잃지 않았던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었을 뿐이다.

 

그때가 90년대 중반이였다. 은어로 지잡대라 일컷는 우리과는 서울에서도 인기가 많았다. 전문대라고 해서 4년제 대학보다 수업을 덜 하지 않는다. 오히려 일정이 더 빡빡하고 속성으로 터득해야 하는 것이 많기 때문에 모든 게 집중교육이다. 그래서 느슨하게 4년 공부하고 실습 나온 수도권 대학생들보다 우리과 졸업생들이 현장에서는 더 인기였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승진에서 밀린다거나 연봉이 크게 오르지 않는 전문대라는 족쇄를 극복하기는 어려웠다.

 

15년이란 세월이 흘러서 나는 다시 우리학교 대학원에 들어오게 됐다. 새로운 지식을 배우기도 하고 학부생 후배들을 가르쳐 주거나 상담을 하기도 한다. 학생들을 대해 이야기 할 때마다 나는 이미 "꼰대"가 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우리 학교 다닐 때보다는 너무 좋은 환경에 있는데 열정은 우리 때만 못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90년대 열악한 환경에 대해서 나도모르게 주저리주저리 늘어 놓게 되는 때가 종종 있다.

 

4년이면 무언가를 배우기엔 충분한 시간이다. 두루두루 다 잘하진 못하더라도 자기 전공에서 하나 정도는 특기를 살릴 수 있는 시간이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4학년이 되면서 진로를 공무원은 정하는 학생들이 많다. 그런 현상은 IMF 이후 지금까지 쭉 이어지고 있다. 전공은 공무원을 준비하면서 가산점을 받기 위한 도구로 전락했다.

 

4학년 2학기가 되면 실습을 나가야 하는데 그길로 취업이 되는 학생도 있고 실습을 마치고 들어와 진로에 대해 다시 고민하는 친구들이 있다. 몇 달 정도 공무원 준비를 해보면 점점 더 미래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래서 공무원 준비를 더 할 것인지 취업을 준비 할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대다수는 공무원이 되지 못한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정해진 그 현실이 학생들을 갈등하게 한다. 그리고 몇몇은 취업을 위해 프로그래밍 학원을 다니고 있다. 4년 동안 전공을 했는데 왜 취업을 위해 다시 학원을 다니고 있을까?

 

조카가 2년 재수 끝에 자기가 원하는 학교에 진학하게 됐다. 전공은 행정이다. 내가 조카에게 해 준 말은 1학년 때는 학교 적응하면서 놀기도 하면서 추억을 쌓고 2학년이 되면 반드시 진로를 결정하라는 것이다. 나는 그 말을 후배들에게도 해주고 싶다. 정말 공무원에 뜻이 있다면 2학년부터 고시공부를 하고 프로그래머가 되고 싶다면 언어를 전문적으로 공부하라는 것이다. 우리가 실업계 고등학교를 다닐 때 1년 간은 순환 실습을 하면서 이것저것 다 경험해 보고 2학년 때 전공을 선택하는 것처럼 대학생도 마찬가지다. 특히 공대라면 더욱 그렇다. 지금 취업을 위해 다시 학원에 다니는 친구들은 시간이 충분 할 때 진로를 결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대학이 취업 학원이냐며 현실 교육을 비난하기도 하지만 이 사회 현상을 바꿀 수 없다면 적응하는 수 밖에 없다. 적응하면 또 변화 시킬 수 있는 기회들이 온다. 또 이 학생들을 탓 할 수 만은 없는 게 현재 이공계 대학은 너무 나이가 들었다. 이 부분은 민감한 부분이라 자세히 서술하기 어렵지만 어쩌면 현재 우리 아이들은 시간이 후퇴하는 대학교육의 피해자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지방대라고 해서 수도권 대학과 차별이 있을 수 없다. 특히 IT 계열은 더욱 그렇다. 내가 CEO라면 실력 없는 수도권 대학생보다 실력이있는 지방대 학생을 뽑는다. 관건은 학생들 스스로 얼마나 자기 실력을 키우고 기술을 연마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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