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마 서른 두 살 쯤 됐을 때 였던 거 같다. 남자들은 그 때가 결혼 적령기였다. 적어도 내 친구들은 그랬다.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의 친구들은 대부분 취직이 빨랐고 20대 중후반에 경제적인 기반을 갖췄다. 경제적으로 안정이 된 친구들은 그때 쯤에 모두 결혼을 했고 늦어도 서른 초반에는 결혼을 마쳤다. 그 마지노선이 서른 둘 이였던 것 같다. 그보다 일찍 결혼한 친구들은 마흔이 되면서 대학생이 되는 자녀가 있기도 하다. 아마 내가 대학을 진학하지 않고 친구들과 같은 노선을 타고 왔다면 지금쯤 그들과 비슷한 가정환경을 꾸려가고 있지 않을까 싶다.
나는 아직 캠퍼스를 누비던 청춘의 정서를 버리지 못했는데 어느새 이혼 했거나 재혼 한 친구들도 있다. 마음은 그게 아닌데 물리적인(?) 시간이 많이 흘렀다. 대학에서 만나게 된 친구들의 인생은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다. 군대를 갔다오고 졸업을 하니 벌써 20대 중후반이 됐고 서른이 넘었어도 여전히 사회 초년생이였다. IMF를 정면으로 맞은 우리에게 결혼의 조건 일순위는 경제력이 됐다. 여자가 그걸 원하지 않더라도 남자 스스로가 불안감을 갖게 됐고 불안감은 무력감이 됐다. 캠퍼스 커플(CC)이였던 친구들은 대부분 그렇게 결혼까지 이어졌고 그렇지 못한 친구들은 계속 결혼이 늦어져 서른 후반까지도 절반 이상이 미혼이였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결혼에 대한 조바심이 없었다. 나만 결혼을 안 하는 게 아니니 조금 늦춰도 그리 늦은 건 아니겠다며 위안을 삼았다.
서른 두살, 나에게도 그런 나이가 있었다. 고등학교 친구들의 결혼을 보면서 나는 많이 늦었다고 생각이 들었지만 대학 친구들을 보면 또 그렇게 늦은 거 같지 않았다. 그리고 당시에는 여자친구가 있었기 때문에 언제든 결정하면 결혼 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여자친구와 결별하고 나자 나는 어느새 서른 중반이 되어 있었다. 주변에서 이런저런 시끄러운 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동전을 던져주며 적선하 듯 자기들만의 조언들을 쏟아낸다. 가장 많이 들었던 얘기가 교회 나오라는 것이다. 참 많이 들었다. 실제로 사귀던 여자와 결혼하기 위해 안 다니던 교회를, 그것도 예비 장모가 다니는 교회를 열심히 다니던 친구는 결혼 승낙을 받는데 성공했다. 십여년이 지난 지금 다시 그 친구에게 아직도 교회를 다니느냐 물으니 웃는다. 지금은 아내와 아이들만 다닌다고 한다.
그리고 벌써 불혹이 됐다. 나는 대학원을 진학했다. 대학원 면접 때부터 교수님이 나를 보면 자주 묻는 말이 "왜 대학원을 오게 되었냐"는 것이다. 나는 그럴 듯한 이유를 이미 만들어 두었기 때문에 연습한대로 대답했다. 오래 전부터 공부를 계속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사실은 나를 정신 없이 바쁘게 만들고 싶은 생각이 더 컸다. 사람들의 실속 없는 질문에 적당한 대답을 찾는 건 곤욕이다. "왜 결혼을 안 하느냐"라는 질문 보다는 "왜 대학원에 오게 되었냐"는 질문에 대답하는 게 더 쉬웠다. 내가 결혼을 안 하는 그럴 듯한 이유 중에 "공부"가 포함 되었고 그 환경이 어느정도 갖춰졌다. (하지만 교수님은 은근히 내가 박사학위까지 하길 원하신다. 이건 나중에 다시...)
친구들 모두 서울로 취직 할 때 나는 학교 근처 지방에 계속 머물러 있었다. 지방에도 나같은 IT 인재(?)도 있어야 되는 거 아니냐, 그런 사명감 같은 게 있었다. 나이 들어서 후회를 많이 하긴 했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모든 대화의 끝에는 서울로 올라오라는 권유로 마무리 됐다. 한 10년은 그런 얘기를 들었다. 그 때는 지방 보다는 서울에 일자리도 많고 연봉에도 차이가 크니 경제적인 이유로 서울로 가야 한다는 것이였는데 지금은 조금 달라졌다.
소개팅이라도 할려면 서울에 직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에 오기만 하면 당장이라도 여자들을 줄 세워 줄 것처럼 말 한다.
아마 사람들은 알고 있었으리라. 내가 결혼 때문에 교회를 나가지 않을 거고 서울로 가는 일도 없을 거라는 걸. 사람들은 왜 내게 교회를 나오라거나 서울로 오라는 조건을 제시하는 걸까. 당사자인 나의 시선에서 사람들이 책임감 없이 던지는 말들은 동정심이다. 결혼을 안 했다고 내가 문제가 있다거나 장애가 있는 사람처럼 여겨지는 것이 자격지심이라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실제로는 보편적인 사람들은 편견을 갖게 된다. 그래서 나는 좀 더 그런 시선에 무뎌지려고 애쓰고 있다.
결혼 하려면 무엇을 하라고 말하지 말고 일단 소개팅 부터 시켜주는 게 더 도움이 된다는 걸, 나를 아는 사람들이 알아 줬으면 좋겠다.
정준하 - 키 큰 노총각 이야기
'느낌이 있는 풍경 > 일상다반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용카드 이용 날짜가 제멋대로. 이래서야 믿고 쓸 수 있나? (0) | 2015.02.12 |
---|---|
조카의 퇴소식 면회 때 다녀 온 논산 탑정호수 (0) | 2014.11.08 |
스마트폰 분실, 패턴 잠김이 풀리다. (0) | 2014.10.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