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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하는 선배의 제안을 그 자리에서 덥석 받아들였어야 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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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MBC 라디오스타는 정말 라디오스타들이 출연했다. 내가 사는 곳에서 MBC radio는 98.9에서 나온다. 1989년 사춘기 시절부터 지금까지 나는 주로 이 채널의 라디오를 들었기 때문에 반가웠다. 배철수 DJ가 음악캠프를 진행하던 역사가 내가 라디오를 들었던 역사와 같다. 박준형은 표준FM이라 자주 듣지 못했지만 다른 DJ들은 매일 목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에 반가운 얼굴들이였다. 방송을 보고 기사가 떴기에 읽었는데 댓글 중에 윤하의 태도에 대한 지적이 많았다. 재미있는 상황에서 웃고 넘겼는데 같은 상황을 보고도 이렇게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상황은 대략 이렇다. 윤종신이 과거에 윤하게 곡을 줬는데 툈자를 맞았다는 것이다. 얘기를 들어보니 정식으로 곡을 써서 들려 준 것이 아니고 휴대전화로 짧막하게 데모를 들려 준 듯 하다. 그 상황은 윤종신이 유머로 재미있게 넘겼다. 그러자 곧이어 김현철이 윤하에게 자기 곡을 받아 달라고 한다. 이 때 윤하는 선뜻 곡을 받겠다 하지 않고 일단 곡을 들어 본 후에 생각을 해 보겠다고 한다. 이 상황이 사람들 보기에 많이 거슬렸던 듯 하다.


김현철의 의도와 윤하의 행동은 나의 시선에서 사실 문제 될 것이 전혀 없었다. 김현철과 윤하는 이미 한 세대 차이가 난다. 살아 온 시대가 서로 다르다. 만약 30대 중후반 정도만 되도 토달지 않고 감사하게 김현철의 제안을 선뜻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게 우리 시대의 문화였다. 선배가 호의를 배풀거나 약속을 요구하면 그 자리에서 일단 긍정적으로 답변을 해 주는  것이 예의였다. 하지만 윤하 세대에서는 그런 수직적인 계급 문화에 익숙하지 않을 수 있다. 앞으로 시대가 그렇게 변할 것이다. 나는 요즘 흔히 말하는 응사(응답하라1994) 세대다. 우리 때만 해도 이런 선후배 문화는 깍듯했고 사회에 나와서도 그런 수직 관계는 연장 되고 있었다.


내가 윤하의 행동에 별 거리낌을 갖지 못했던 이유는 내가 윤하같은 성격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자영업을 하고 있는 내가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분명히 갑, 을 관계가 형성 된다. 그러나 나는 군대에서 지휘관과 병사, 스승과 제자 처럼 분명히 선이 그어진 수직이 아니면 절대우위에 위치해 있다고 생각 되는 사람이 없다. 존경하는 사람이 있다면 존경심을 갖으면 되는 것이지 내가 그에게 복종해야 된다고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를 눈치 없다, 융통성 없다고 지적한다.


여러 사람이 있고 더군다나 방송에서 선배가 곡을 받아 달라고 부탁하면 후배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네 그러겠습니다 하고 대답해야 하는 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예절이고 관습이였다. 저런 상황이였다면 나 역시도 윤하와 똑같은 대답을 했을 것이다. 실제로도 그렇다. 상황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약속을 잡는다거나  호의를 받아들이게 되면 내 의도와 다른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흔히 그런 것이다. 길을 가다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을 횡단보도에서 마주치게 되고 짧게 인사하며 돌아설 때 언제 밥이나 한끼 하자고 약속을 꺼내게 된다. 그 짧은 순간에 나는 내가 언제 시간이 될지를 생각하게 된다. 날짜와 시간을 상대와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적당한 시간을 떠올리지 못하면 "그래"라고 대답을 못한다. 불투명한 약속을 잡는 게 나에게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리 선배가 별 뜻 없이 건낸 말일지 모르지만 받아들이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 짧은 말 한 마디도 약속을 지켜야 하기에 선뜻 답변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윤하 입장에서는 오히려 김현철이란 대 선배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어려워 하기 때문에 쉽게 제안을 받아들지 못한 것이다. 그 자리에서 "네"라고 대답 했다면 그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 하기 때문이기에 신중 했던 것이다. 선배에 대한 그런 존경심이나 깍듯함이 없었다면 오히려 선뜻 "네"라 대답해 좋은 이미지를 얻고 나중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것에 대한 핑계를 준비하거나 방송에서 농으로 한 말이려니 흘려 버리면 되는 것이였다.


솔직히 나는 처세술이 약한 편이다. 상대가 듣기 좋아하는 말만 골라서 하는 성격이 못 된다. 바꿔 볼려고 노력도 많이 했다. 처세술에 관한 인문서나 인터넷 강의들도 꽤나 많이 챙겨 보곤 했다. 그래도 본성이 잘 고쳐지지가 않는다. 일단 앞에서는 "네"라고 대답하고 나중에 상황 봐서 약속을 뒤 엎을 수 있는 기술을 가르쳐 주지만 아무리 해도 나에겐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그래서 애초에 가벼운 제안이나 약속도 쉽게 그 자리에서 답변을 해주지 못한다. 사람들에게 융통성 없고 갑갑한 사람으로 이미지가 굳어졌지만 그게 꼭 나쁘지만은 않다. 상황에 끌려 원치 않는 약속을 해 놓고 약속을 지키지 못할 상황이 될까봐 전전긍긍해야 할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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