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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지켜보는 것만으로 정의는 지켜지지 않는 다는 걸 깨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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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5월 23일.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나는 칠일째 잠을 설치고 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꿈속에 나타나 내게 말을 거신다.
꿈속에서 의식적으로 "돌아가셨구나" 알게 되는 순간 눈이 번쩍 뜨이며 가슴 한켠이 아려와 다시 잠들기 어렵다.
그러면서 서서히 내 심장이 뜨겁게 달궈지고 있음을 느낀다.

' 투표만 열심히 한다고 의무를 다한 것이 아니다.
92년이면 내가 고등학교 2학년이 였을거같다.
대선 준비로 온 나라가 시끌벅적하던 때다.
그 때 사회선생님이였는데 그 중 유력한 후보였던(늦은 봄이 였으니 최종 후보등록을 하지 않은 상황) 김대중에 대해 이야기 주었다.
그 시대만 해도 민감한 사회분위기였기 때문에 선생님이 특정 후보에 대해 수업시간에 이야기 해서는 안되는거였다.
김대중이 어쩌가 감옥에 가게 됐고 감옥에서 어떻게 생활하였는지, 민주주의를 위해 무엇을 했는지 등을 10여분 정도 말씀을 하셨다.
그 때만해도 언제 수업 끝나서 집에가나 하는 생각으로 머리가 꽉차 있던 때라 크게 관심있게 듣지는 않았다.
그러나 기억에 남는 말이 하나 있다.
감옥에 있으면서도 끝없이 독서를 했는데 교도소 도서관엔 더이상 읽을 책이 없어서 외부에서 책을 많이 들여와야 했다는 이야기다.
김대중은 책을 많이 읽는 사람, 그러면 똑똑하겠다. 그 때의 생각 전부다.
그 해 대선은 김대중은 낙선하고 김영삼이 당선 됐다.

시간이 흘러 내가 23살이 되던 해에 나는 첫 투표권을 갖게 됐다.
군대에 있었으로 부재자 투표를 해야 했다.
그 때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97년 대선이였다.
우리 내무반은 14명이 생활을 했는데 경상도, 전라도, 경기도, 강원도(나) 다양한 사람이 있었다.
특이하게 병장 중엔 부산, 대구 사람이 많았고 상병 중엔 광주, 전주 사람이 많았다.
이들이 새벽까지 잠을 안자고 투표 결과를 보고 있었다는 건 다음 날 아침 점호 때였다.
전라도 지역 고참들이 많은 갈굼을 당하고 있었다.
우리 부대는 폭력이나 폭언등이 없었으므로 말로만 갈굼을 하지만 전라도 고참들 한 마디를 지지 않는다.
그렇게 나의 첫 투표 경험은 지났고 우리나라 민주주의 정부가 첫 시동을 걸게 됐다.

전역을 하고 나는 지방선거를 하게 됐고 국회의원 선거 등을 할 기회가 생겼다.
그다지 정치엔 관심 없었지만 내가 투표를 거리지 않고 무슨 일이 있어도 했던 이유는 국민으로써 가장 기본저인 참정권을 포기하고 정치인을 욕하는 사람들은 위선자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얼마나 뻔뻔한가.
자기는 앞에 나서지 않으면서 뒤에서 팔장끼고 뒷말하는 사람처럼 못나 보이는게 없다.
못나 보이지 않기 위해서 나는 하루 중 한시간을 기꺼이 투표하는데 썼다.

이번 노무현 前대통령의 서거를 보며 투표를 잘한다고 내 의무를 다한게 아니라는 걸 깨닳게 됐다.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더 열심히 싸워야 한다며 더 큰 힘이 있어야 한다.
싸워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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