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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면 망한다는 지역포털 사이트, 다시 시작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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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겨울이 되서야 나는 군복을 벗을 수 있었다. 복학을 하고보니 PC통신으로 라디오에 사연 보내고 미디 음악을 다운받던 시절과는 많은 것들이 달라져 있었다. 이메일로 리포트를 제출하라는 교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복학생들은 우왕좌왕 하다 교수님 연구실 문 밑으로 디스켓을 밀어 넣는 고전적인 방법을 써야 했다. 후배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며 만들었던 이메일 주소를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 오르지오와 한메일이였다.


IMF 한가운데 있던 우리는 선후배의 정을 쌓기도 전에 취업 전선의 경쟁자였다. 학점과 장학금이 모든 것의 우선순위였다. 나 역시 따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게 없어 장학금이 유일한 수입(?)이였기 때문에 학점 경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후배 한 명이 나 때문에 등급이 밀려 전액 장학금을 타지 못하게 된 것이 지금도 마음에 걸리는 일이다. 마지막 학기가 되면서 후배와 동기들은 취업을 나가기 시작했고 나는 교수님의 권유로 창업동아리를 맡아서 운영하게 됐다. 사실 그 동아리가 자리 잡는대로 나는 교수님의 추천을 받아 서울로 취업을 나갈 생각이였다.


다들 취업을 나가고 한산해진 학교에서 교수님과 대화할 시간이 많아졌다. 그러던 중 성공 사례 하나를 말씀해 주셨다. 외래강사를 하던 사람이 각 대학을 다니며 대학신문에 나와 있는 초빙교수, 강사 모집 광고를 발췌해 인터넷 사이트에 올리기 시작했는데 방문자가 늘면서 나중에는 돈을 받고 광고를 해주게 됐다는 것이다. 그런 아이템으로 사이트를 운영하면 가능성이 전혀 없지 않다는 말씀이였다.


군대 있으면서 말년에 HTML과 JS 이론서를 본게 전부였지만 홈페이지 제작 방법을 익히는데는 크게 어려움이 없었다. 나모와 포토샵만으로 사이트를 만들고 교수님 말씀처럼 각 대학의 구인 정보와 생활정보 신문에 실린 구인정보들을 정리해 올리기 시작했다. 웹프로그램을 모르던 나는 게시판으로 당시에 무료로 제공되던 슈퍼보드를 달았다. 게시판에 지인들이 축하 인사를 남긴후 아무도 찾지 않는 유령 사이트로 전락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한동안 사이트를 방치했다. 1999년은 그렇게 마무리가 됐다.


졸업 후 창업 동아리를 나와 나는 학원에 강사로 일하게 됐다. 전에 강사로 있던 학원에서 강사 구하기가 어려워 몇 달 도와주기로 했던 일이였다. 학원을 그만두고 얼마 있지 않아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서울에서 수소문 끝에 나를 소개 받게 됐는데 함께 쇼핑몰을 제작하던 프로그래머가 갑자기 연락 두절 되는 바람에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에게 전화를 준 사람은 프리랜서 웹디자이너였다. 내가 웹프로그램을 공부 한 건 교수님 연구실에 있던 Perl과 ASP 책을 한 번씩 훑어 본 게 전부였다. 무슨 정신으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나는 그 일을 내가 맡아서 하겠다고 승락했다. 프로그램은 절반 정도 만들어진 상태였지만 나는 PHP를 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 소스를 전혀 이해 할 수 없었다. 내가 약속 받은 기간은 3주였다. 서점에 가서 PHP 책을 하나 사서 일단 몇 번을 정독했다. 일단 코드를 눈에 익숙하게 할 필요가 있었다. 어릴 때부터 여러 언어를 공부했던 게 이럴 때 도움이 된다. 그렇게 1주일 PHP에만 매달렸다. 그게 2000년 8월 쯤이였다.


3주만에 쇼핑몰을 만들긴 했다. 상품을 등록하고 페이지에 전시하고 장바구니에 담아 페이게이트에서 결제가 되도록 하는 비교적 간단한 업무 시스템이였다. 오픈 한 뒤에도 예기치 않은 오류들이 나와 몇 달을 두고 A/S를 해줘야 했지만 어쨌든 나의 웹프로그램 첫 작품은 쇼핑몰이 됐다. 하루에 2, 3시간씩 자면서 PHP를 몸으로 익힌 덕분이였는지 하나를 보면 하나가 바로 머리속에 각인 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단한 집중력이였다. 어쨌든 그 쇼핑몰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PHP가 어느정도 익숙해지자 과거에 묻혔던 내가 만들었던 최초의 사이트가 다시 떠올랐다. 다시 제대로 만들어보고 싶어졌다. 교수님의 온라인 헤드헌터로 키울 수 있다는 말씀에 나는 다시 구인구직 사이트를 제대로 만들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말 그대로 구인구직 사이트를 기획하다 보니 학창 시절 자취방을 얻기 위해 학교 주변 전봇대에 붙은 전단지를 찾아 다니던 기억이 떠올라 부동산 중개도 겸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프로그램은 하나 만들면 다른 콘텐츠들은 조금만 변형해도 되기 때문에 기왕이면 중고차도 넣고 중고거래 프로그램도 기획에 넣었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나는 아예 교차로 같은 무가지 신문을 인터넷으로 옮겨 보자는데까지 기획하게 됐다. 그리고 다시 밤을 새워 코딩을 해 나갔다. 2000년 9월 추석 연휴가 막 시작 되기 전 나는 도메인을 등록하고 사이트를 오픈했다.


2000년 9월 인코즈닷컴 캡쳐


홈페이지에서 웹디자이너의 영향은 절대적이다. 이 캡쳐한 화면을 보면 그렇다. 디자이너 없이 혼자 모든 걸 소화 하려니 디자인이 영 볼품이 없다. 화려하진 않지만 정식으로 오픈 된 나의 첫 지역 포털 사이트가 됐다. 명함을 만들었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사이트를 홍보했다. 처음엔 사람들 호응이 좋았다. 다행히 국내 포털들이 사이트 등록을 유료로 전환하기 전에 검색 등록을 한터라 인터넷 검색에서 함게 노출되는 경쟁 사이트가 없었다. 나는 이 사이트를 2005년까지 운영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2004년까지 관리하다 운영을 포기하니 웹호스팅 연장 기한이 지나 사이트는 어느 순간 연기처럼 사라졌다. 사이트를 닫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여기에 들이는 노동력과 시간에 비해 수입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제작 노하우는 있었지만 경영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던 게 문제였다.


10년이 지났지만 나는 인코즈닷컴을 잊어본적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의 홈페이지, 쇼핑몰을 제작해주면서 먹고 사는 중에도 언젠가는 다시 내 사이트를 운영해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동안 웹프로그램 기술도 늘었고 시장도 어느정도 읽을 수 있을만큼 경력이 쌓이고 성장했지만 쉽게 지역 포털을 다시 시작하기는 어려웠다. 사이트를 제작하는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마음만 먹으면 몇 일만에라도 하나 만들어 낼 수 있는 실력을 갖췄다. 그런데도 사이트를 다시 오픈하는데는 10년이 걸렸다.


그동안 많은 지역 포털 사이트들이 생겨났다 사라지는 걸 봐 왔다. 전국이 아니라 우리 지역에서만도 적지 않은 수가 세상에 제대로 빛도보기 전에 사라졌다. 10년 동안 나는 우리 지역 사이트가 생겨나고 사라지는 걸 매일 모니터 했다. 가맹점처럼 지역 포털을 분양하는 업체들이 난립하면서 한 지역에만 포털들이 몇 개가 생겨났다. 시장은 제한적인데 경쟁은 몇 배로 치열해 졌다.


2010년 지역 포털을 다시 시작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2011년 구체적인 기획에 들어갔다. 이번엔 며칠만에 주먹구구식으로 메뉴 짜서 메인에 중고거래 정보나 게시하는 그런 사이트가 아니라 최소한 누군가에게 쓸모있는 콘텐츠를 우선 만들기로 했다. 이름도 인코즈닷컴에서 원주스토리로 바꿔 도메인도 선점해 뒀다.


2011년 원주스토리를 구체적으로 기획하면서 그동한 원주에서 생겨났다 사라진 사이트나 운영은 되고 있으나 유령 사이트가 되어버린 분양 받은 포털 사이트들을 분석했다. 지금 완성된 원주스토리 사이트를 보면 별 거 없어 보이지만 그 사이트를 기획하고 운영 계획을 세우는데 근 3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2013년 10월에 사이트 제작에 들어가 2014년 5월 오픈을 하게 됐다. 오픈한지 3개월이 되어가지만 나는 아직 본격적으로 사이트를 홍보하고 있지 않다. 조금 천천히 가기로 했다. 사용자 입장에서 직접 사이트를 이용하면서 부족한 부분들을 계속해서 개선해 나가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어느정도 사용상 불편했던 점들이 해소 되면 8월 중 정식 오픈하고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홍보하기로 했다. 지금도 간간히 SNS을 통해 홍보를 하고 있기는 하다.


사이트를 기획하고 오픈하는데까지 4년이 걸린셈이다. 원주스토리를 만들기 위해 지음빌더를 개발하는 기간이 오래 걸리긴 했지만 준비 기간이 꽤 길었다. 이번에는 인코즈닷컴처럼 사이트 운영 실적이 저조하다고 내팽개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신중하게 시작하고 싶었다.


나도 아는 것이고 다른 사람들도 아는 것이다. 지역 사이트의 성공 가능성은 쇼핑몰 성공 가능성 만큼이나 어렵다. 지방에는 아직 보수적인 미디어 형태를 고집하는 독자들이 많기 때문에 손에 잡히는 종이 미디어가 아니면 광고를 수주 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온라인 매체지만 오프라인 인지도가 중요하다. 그런 인지도를 쌓은 방법에 대해서 그동안 많은 고민들을 해 왔다. 일단 시간이 가장 중요하다. 운영이 어렵다고 사이트를 포기하지 말고 몇 년이 지나도 꾸준히 정보를 업데이트하고 관리하다보면 조금씩 신뢰와 인지도가 쌓이게 된다. 큰 돈을 들여 대대적인 광고를 할 것이 아니라면 시간 밖에는 도리 없다.


어차피 망할 거 왜 하냐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내가 이 사이트를 다시 시작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15년 동안 가슴에 품고 있던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이고 내가 포기 하지 않으면 사이트는 망하지 않는다고 믿게 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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